36. 그놈(GNOME) 데스크탑의 시작

1994년 미겔(Miguel de Icaza)은 멕시코 씨티에 위치한 멕시코 국립 대학에서 수학을 공부면서, 대학 전산실에서 시스템 관리자로도 일하고 있었다.

어느날 친구로 부터 GNU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리차드 스톨만이라는 사람이 만든 프로젝트인데, 운영체제 커널 부터 모든 유틸리티와 응용 애플리케이션을 자유 소프트웨어로 만드는 프로젝트야. 소소코드가 공개되고 무료로 사용할 수 있으며 고쳐서 재배포도 가능하다고 하네”
“그래? 컴파일러도 있어?”

“당연하지. GCC(GNU C compiler)가 있어.”
“잘됐다. 이번에 전산실에 새로 들어온 썬 스팍 워크스테이션에 GCC를 설치해야겠어. 솔라리스 운영체제에는 C 컴파일러가 기본으로 포함이 안되어 있어서, 따로 사야돼.”


“솔라리스에 모든 GNU 툴을 설치할 수 있구나. 무료고 게다가 소스코드가 공개되어 있고, 자유롭게 배포가 가능하다니⋯ 정말 자유 소프트웨어로 OS 부터 모든 툴을 만든다면 정말 대단할 것 같아.”

(GNU Manifesto를 읽으면서..)

“나도 뭔가 만들어봐야겠어. 유닉스에는 도스에서 쓰던 노턴 커맨더 같은 도구가 없는 것 같군. 내가 하나 만들어봐야겠어. 이름은 미드 나이트 커맨더(Midnight Commander)!”


미드 나이트 커맨더 (출처: 위키피디아)

1994년 미겔은 미드 나이트 커맨더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현재까지도 다른 사람들이 프로젝트를 이어 받아 계속 업데이트하고 있다.

이후 그의 관심은 리눅스로 향했고, 리눅스 RAID 디바이스 드라이버에 기여를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리눅스 커널을 다른 CPU에 포팅하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된다.

데이비드 밀러(Dave S. Miller)라는 친구가 리눅스를 썬 스팍 머신에 포팅하고 있네. 나도 전산실에 있는 스팍 머신에 리눅스를 설치해봐야겠다.


“앗! 커널 패닉이…”

“드디어, 패치 완성. 코드 리뷰를 부탁해야겠다.”


“제가 스팍용 리눅스 커널 패치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한번 봐주세요.”

“물론이죠. 그런데, 궁금한게 있어요. 리눅스 RAID쪽에 기여를 하고 있는데, RAID 디바이스가 있어요? 그 장비가 비싼데 어느 회사에서 도움을 주나요?”


“사실 RAID 디바이스는 없고요. 제가 소프트웨어로 에뮬레이터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RAID 디바이스 드라이버를 만들고 있지요.”

“이 친구 대단한데, 미드 나이트 커맨더도 개발하면서 리눅스 RAID 디바이스 드라이버도 만들고, 게다가 하드웨어를 에뮬레이션 하다니..”

리눅스 RAID 작업을 마친후, 여름 방학 동안 리눅스 커널을 SGI 워크스테이션에 포팅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안녕하세요, 당신이 썬 스팍에 리눅스 커널을 포팅하는 것을 봤어요. MIPS에도 리눅스 커널 포팅이 가능한가요? 가능하면 실리콘 밸리에 있는 오피스에 와서 SGI 워크스테이션에 리눅스 커널을 포팅해주면 좋겠습니다.”


“리눅스 커널도 포팅하고 돈도 벌고 실리콘 밸리 구경도 할 수 있겠구나.”

실리콘 밸리에서 일하던 어느날 KDE 프로젝트 소식을 접하게 된다.


“누군가 GNU 리눅스를 위한 데스크탑 프로젝트를 시작했군. 모든 코드를 GPL로 릴리즈한다고? 대단한데.”


“RMS, KDE 프로젝트 대단한 것 같아요. 우리도 지원을 해야합니다”


아니야, 문제가 있어. 결과물이 자유소프트웨어가 될 수 없어.


“그렇군요. Qt가 독점 소프트웨어네요.”(34화 참고)


“음.. 트롤테크가 지금은 Qt 소스 코드도 공개하고 KDE 공동체와 좋은 관계를 갖고 있지만,나중에 회사가 인수되거나 하면 계속 Qt 코드를 지금처럼 공개할지, KDE와 어떤 관계를 가져갈지 알 수 없잖아?”

자유 소프트웨어 진영은 트롤테크에 Qt 소스코드를 GPL로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사업을 하는 트롤테크 입장에서 누군가 Qt를 코드를 포크해서 새로운 사업을 진행해도 막을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더 이상 트롤테크의 결정을 기다릴 수가 없네. 결국, 우리에게는 두가지 선택지가 있군. Qt의 자유 소프트웨어 버전을 만들거나, 새로운 리눅스 데스크탑을 만들어 GPL로 공개하는 것.”

“새롭게 리눅스 데스크탑을 만든다면 어떤 툴킷을 써야할까?”
“GIMP에서 사용하는 Gtk+ 툴킷을 써볼까?”

Gtk+ 툴킷은 원래 GIMP에서만 사용하기 위해 만든 위젯이였다. 하지만, 별도로 다른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데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프로젝트 이름은 GNOME (GNU Network Object Model Environment). MS의 ActiveX과 같은 컴포넌트를 모델을 기반으로 데스크탑을 만들어봐야지.”

1997년 8월 17일, 미겔은 그놈 프로젝트의 시작을 정식으로 발표한다.

“저는 오늘 여러분께 그놈 프로젝트 시작을 알립니다. 이 프로젝트는 CDE와 KDE와 비슷하지만, 완전히 자유소프트웨어로 개발됩니다. 위젯으로 Gtk+를 사용할 것이고, 다른 프로그래밍 언어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API 바인딩을 제공할 예정입니다.”

“왜 KDE를 사용하지 않지요?”

“KDE는 훌륭한 프로젝트입니다. 실력있는 해커가 참여하고 있고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냈지요. 안타깝게도 그 결과물은 자유 소프트웨어가 아닌 독점 소프트웨어인 Qt 툴킷을 기반으로 구현되었습니다. 이는 KDE 소프트웨어를 배포하려는 사람들에게 법적인 문제를 제기합니다.


“대신에 Qt의 자유 소프트웨어 버전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작성된 KDE 프로젝트 코드 라인수 보다 Qt 라이브러리가 더 많습니다. 이는 Qt 라이브러리를 다시 작성하는 일이 프로젝트 자제를 만드는 것 보다 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게다가 Qt는 C++하고 Python만 지원하지만, Gtk+는 C, Scheme, Python, C++, Objective-C 및 Perl에서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놈 프로젝트가 사용할 소프트웨어 라이선스가 뭔가요?”

“대부분의 GNU 소프트웨어가 그렇듯이, 그놈 프로젝트에서 개발한 소프트웨어는 GNU GPL을 따르고, 라이브러리는 GNU LGPL의 조건에 따라 릴리스될 것입니다.


“당신이 모든 것을 바닥 부터 만들건가요?”

아닙니다. 우리는 프로젝트 가이드 라인을 준수하면서 가능한한 GNU 프로그램의 기존 코드를 최대한 재사용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또한, 일관되면서 편리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는 것도 하나의 프로젝트가 될 것입니다. 물론, KDE의 코드도 재사용 할 계획입니다.


“오~ 그놈 프로젝트라… 깔끔하게 GPL로 라이선스를 정리했군. 구미가 당기는데..”

리눅스 커널 해커인 알랜 콕스(Alan Cox)도 초기 그놈 프로젝트가 자리를 잡는데, 많은 기여를 한다. 회사로서는 레드헷도 그놈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리눅스 서버 솔루션을 제공하는데, 데스크탑 솔루션이 없어서 고민이였는데, 다행히 그놈 데스크탑이 라이선스 문제도 해결해니, 자 우리도 개발에 참여한다.”

이외에도 많은 해커들이 그놈 프로젝트에 기여를 하기 시작한다.

Gtk+ 역시 크로스 플랫폼을 지원하기 때문에 그놈 프로젝트의 탄생은 Qt에게 위협이 되었다. 결국, 트롤테크는 1998년 QPL 라이선스를 발표했다.


QPL를 통해 KDE 애플리케이션의 재배포 문제를 해결했지만, 여전히 자유 소프트웨어 진영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QPL?, 너무 늦었어. 그놈 데스크탑 1.0이 곧 나올꺼야.”

그놈 데스크탑 0.3 출처: A Brief History of GNOME, GUADEC, 2017

1998년 9월 0.3 버전을 출시한다.

1999년 10월, 미겔은 레드헷 창업자 밥 영의 도움으로 넷 프라이드맨(Nat Friedman)과 함께 그놈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헬릭스 코드(Helix Code)라는 회사를 창업한다.

에벌루션의 이메일 클라이언트(출처: 위키피디아)

Gnumeric (출처: 위키피디아)

여기서 엑셀과 호환되는 지뉴메릭(Gnumeric)과 아웃룩과 호환되는 에벌루션(Evolution)을 개발한다. 이 회사는 많은 그놈 프로젝트 해커를 고용해서 개발을 지원했고 이는 그놈 프로젝트가 안정적으로 발전하는데 도움을 준다.

1999년 8월 매킨토시 초기 개발자로 유명한 앤디 헤르츠펠트가 세운 Eazel이라는 회사는 그놈 데스트탑용 파일 관리자인 노틸러스를 개발한다. 회사는 나중에 문을 닫았지만, 노틸러스는 현재까지도 그놈 데스크탑에서 사용되고 있다.


“매킨토시 데스크탑 개발 경험을 그놈에 쏟아 부었죠.”

또한 썬 마이크로시스템즈도 GNOME Accessbility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마침내 그놈 공동체는 1999년 9월 그놈 데스크탑 1.0을 출시한다.


그놈 데스트탑 1.0 (출처: 위키피디아)

결국, 트롤테크는 2000년 Qt에 GPL 라이선스를 추가한다. 하지만, 이는 너무 늦은 대처였고, 결과적으로 오픈소스 데스크탑은 GNOME과 KDE 공동체로 분열되고, 데스크탑 전쟁이라고 부를 만큼 서로 경쟁하게 된다.

  • C vs. C++
  • 미국 & 남유럽 vs. 북유럽
  • 해커 vs. 기업
  • GTK+ vs. Qt

이후, 미겔은 회사 이름을 Ximian으로 변경하고 닷넷 프레임워크(.Net Framework)의 오픈소스 버전인 모노(Mono)를 개발한다. Ximain은 그놈 재단 멤버로 그놈 프로젝트를 후원했고, 데스트탑 리눅스 콘서시엄 멤버이기도 했다. 이후 2003년 4월 노벨에 인수됐지만, 노벨을 인수한 Attachmat Group에서 모노팀을 해고하자, 미겔은 팀을 이끌고 2011년 Xarmarin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모노 개발을 지속한다. 2016년 MS는 Xamarin을 인수하고 공식적으로 모노를 통해 리눅스용 닷넷 프레임워크를 지원하기 시작한다.


그놈 데스크탑 3.0 (출처: gnome.org)

현재 그놈 데스크탑은 레드헷에서 주요 개발팀을 이끌고 있고 그놈 공동체와 개발하고 있다. 현재 3.0 버전이 나와 있으며 레드헷, 우분투, 페도라 등 여러 리눅스 배포본에서 사용하고 있다.

참고

19. 리차드 스톨만과 자유소프트웨어 이야기

해커 집단: 유닉스 공동체와 ITS 공동체
해커 공동체는 태생적으로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AT&T와 UC 버클리 대학을 근거지로 한 유닉스 공동체와 MIT AI Lab이 중심이된 ITS 공동체가 있다. 두 공동체는 서로 비슷한 부분이 많은데, 우선 초기 구성원들이 멀틱스 개발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는 것과 모두 멀틱스 개발에 회의를 느끼고 독자적인 OS를 PDP-10에서 구현했다는 부분이다. 차이라고 하면, 유닉스 공동체는 기술적 진보에 영향을 주었고, ITS 공동체는 해커, 자유 소프트웨어, 위키 등 해커 문화와 철학에 영향을 주었다. 리누스 토발즈는 기술적으로는 유닉스를 참고해서 리눅스 커널을 만들었고 ITS 해커의 진정한 계승자인 리차드 스톨만(이하 RMS)의 지휘 아래 개발한 GNU 소프트웨어를 사용했다. 또한 리눅스 커널에는 GPL 라이선스가 적용되었는데, 이는 ITS 공동체으로부터 비롯된 자유 소프트웨어 철학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어찌보면 이들 두 진영이 결합한 산물이 리눅스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ITS 공동체의 실질적인 계승자인 리차드 스톨만을 소개하려 한다.

리차드 스톨만
RMS는 이미 고등학교 때 부터 여름 캠프를 통해 컴퓨터를 접했다. 하바드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있었으나, 1학년이 끝날 무렵인 1971년 부터 MIT 인공지능연구소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기 시작한다. 학부를 마친 그는 MIT에서 물리학 석사를 한 후, 박사학위 1년차에 결국, MIT AI Lab. 연구원으로 전향한다.

그 당시 MIT 인공지능 연구소는 DEC에서 만든 PDP-10이라는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들은 DEC에서 제공하는 OS 대신 자체 개발한 ITS(Incompatible Timesharing System)라는 시분할 운영체제를 어셈블리어로 개발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ITS는 현대 OS와 철학적으로 상당히 다른데, 우선 초기에 개발될 당시, 로그인 암호가 없었고, 사용자는 도움말과 소스코드를 포함해서 모든 파일 수정할 수 있었다. 이러한 ITS 공동체의 철학과 개발 문화가 나중에 자유/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오픈 디자인, 위키 운동에 영향을 주었다[3]. 그리고, 모든 ITS 컴퓨터가 초기 인터넷의 형태인 아파넷(ARPAnet)에 연결되어 있어서 자연스럽게 해커 문화가 탄생한다.

당시 RMS도 ITS개발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제록스 레이저 프린터가 연구소에 들어왔다.

레이저 프린터의 성능은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감동도 잠시뿐, 가끔 종이가 프린터에 걸리면 터미널에서는 알 수가 없었고, 걸린 종이를 빼기 전까지 모든 사람이 프린터를 사용할 수 없었다.

결국, 인쇄 명령을 내린 후에 직접 프린터 앞에 가서 출력이 완료되기까지 기다려야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RMS은 작은 프로그램 작성하여 프린터 잼이 발생하면 모든 터미널에게 알림 메시지가 가도록 하였다.

프린터 제어 프로그램 소스 코드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따로 프로그램을 만들었지만, 학교내에서 상당히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이와 같은 일종의 해킹이 AI Lab의 상징이 되었고, 그들 스스로를 프로그래머 보다 해커라고 부르기를 좋아했다.

RMS는 나중에 누군가 제록스 프린터 제어 프로그램의 소스코드를 갖고 있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직접 개발자를 찾아서 소스코드를 복사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NDA에 사인하고 프로그램을 개발한 것이라 마음대로 소스코드를 줄 수 없었다.

RMS는 그가 개인적인 이유가 아닌 NDA로 인해 거부한 것이라서 더욱 심각하게 이 사실을 받아들였다. 이 사건은 훗날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을 시작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물론, 좋은 일도 있었다. MIT AI Lab.에 PDP-11에 도입되었을 때, PDP-10과 PDP-11과 네트워킹을 할 필요가 생겼다.

RMS는 이미 하버드대 Computer Lab에서 PDP-10용으로 네트웍 프로그램을 개발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해커들 사이에 소스코드를 공유하는 것이 당연하던 시절이여서 쉽게 소스코드를 구한다.

그리고 새로운 기능까지 추가한다.

이처럼 1970년대 프로그래머 사이에 소스코드를 빌리는 것은 마치 이웃으로 부터 망치나 설탕을 빌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1980년대 초 PDP-10이 단종되고 해커들이 다른 회사로 옮기면서 ITS 공동체는 자연스럽게 해체되었다.

MIT AI lab.도 새롭게 DEC에서 개발한 VAX를 도입하면서 어셈블리어로 개발된 ITS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ITS를 운영할 인력이 부족해지자 PDP-10에도 DEC가 개발한 OS를 설치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DEC가 개발한 OS를 사용하려면 복사는 커녕 자료를 유출하지 않겠다는 계약 조건에 동의해야 했다.

RMS는 제록스 프린터 프로그램 소스 코드 공개 문제로 인해 이러한 비공개 협약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상하고 있었다.

그는 독점 소프트웨어 체제에 합류하느냐 마느냐하는 도덕적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결국, 그는 그가 오랫동안 경험한 자유 소프트웨어 대한 신념을 지키고 이를 유지할 수 있는 해커 공동체를 다시 부활시키기 위해 GNU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다.

참고

  1. 리차드 스톨만, GNU 운영체제와 자유소프트웨어 운동, 오픈소스 혁명의 목소리, 한빛출판사, 2013
  2. Sam Williams, Free as in Freedom. 2002
  3. Incompatible Timesharing System, Wikipedia

참고로, 등장 인물 간 대화는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만화 중 잘못된 부분이나 추가할 내용이 있으면 만화 원고에 직접 의견을 남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 외 전반적인 만화 후기는 블로그에 바로 답글로 남겨주세요. 다음 이야기는 GNU Project를 소개합니다.